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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4.19와 5.16은 끝났다

[중앙시평] 4·19와 5·16은 끝났다

[중앙일보 2007-05-16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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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기봉] 역사로서 5.16이란 무엇인가는 46년 전 오늘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묻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이 돼서야 날기 시작한다"는 헤겔의 말처럼, 사태가 종료된 후에야 역사가는 그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
 

5.16 이전에 4.19가 있었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가장 빛나는 업적인 민주화와 근대화는 이 두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성취됐다. 4.19가 한국 민주화 운동의 기점이 됐던 진보혁명이라면, 5.16은 조국 근대화를 구호로 해서 대중을 강압적으로 동원하는 독재 권력을 성립시켰던 보수혁명이다. 이후 대한민국 역사는 이 두 혁명이 목표로 했던 정치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지지세력 사이의 헤게모니 투쟁으로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4.19가 없었다면 5.16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4.19는 5.16의 어머니다. 학생들이 4.19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관계와 유사하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코르시카 촌놈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의 자식인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이 구체제를 종식시키고 건설한 공화국을 해체하고 스스로 황제가 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을 프랑스에 영광을 가져온 위인으로 숭배한다. 그는 프랑스혁명의 반항아로 태어났지만 법 앞에 평등, 종교적 관용, 출생이 아닌 능력에 따른 출세와 같은 근대적 사회개혁을 완성했다.

 

한국의 나폴레옹은 박정희다.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을 배반했듯이, 박정희는 4.19 혁명이 성취한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대통령이 됐다. 전자가 프랑스의 근대적 개혁을 완수했다면, 후자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5.16의 빛나는 업적 이면에는 4.19가 이끌어낸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의 긴 그림자가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은 5.16에 대한 4.19의 역전극이다. 성장의 그늘 속에서도 민주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 5.16의 유산을 짊어지겠다는 후계자들이 등장했다. 지금 한나라당에서는 그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한창이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와 박정희 성장신화의 계승자인 이명박 가운데 누가 적자(嫡子)가 되든 2007년 대선을 4.19에 대한 5.16의 재역전을 목표로 해서 치르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항마는 4.19의 계승자가 돼야 하는가?

프랑스혁명사의 교황이라 불렸던 프랑수아 퓌레(F Furet)는 1989년 "프랑스혁명은 끝났다"는 선언을 했다. 1789년 이래의 프랑스 역사가 혁명과정에서 생겨난 좌파와 우파의 정치투쟁으로 점철됐다면, 현실사회주의 몰락으로 지난 200년 동안 프랑스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마침내 종결됐다는 것이 선언의 의미다.

 

최근 누가 "이제 6월 항쟁은 끝났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결국 이제야 비로소 4.19혁명이 종식됐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4.19의 종식은 5.16의 승리인가? 아니다. 4.19와 5.16의 두 축으로 형성된 한국 현대사의 구조가 바뀌고 있는 징조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으로 사회와 역사를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자.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4.19인가 5.16인가가 아니라 4.19와 5.16이다. 그렇다면 2007년 대선을 또다시 이 같은 이분법으로 편 가르기를 해서 치르겠다는 것은 시대착오다. 우리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과거에 기대 현재의 권력을 잡고자 하는 지배자(dominator)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의 나아갈 방향을 선도하는 리더(leader)를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언하자. "이제 4.19와 5.16은 끝났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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