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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돈의 힘,법의 힘

 

[문창극칼럼] 돈의 힘, 법의 힘

[중앙일보 2007-05-15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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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창극] 김승연 회장 사건은 단순 폭력사건인가, 사회적인 사건인가. 한화 측은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잘못 표현됐다고 변명한다. 본인의 공개사과 내용도 비슷하다. 밖에서 얻어맞고 들어온 아들을 보고 화가 난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보복을 한 단순한 폭행사건이라는 것이다. 보통 아버지들도 그렇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개인의 단순 폭력사건만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재벌, 폭력, 권력, 언론, 법이라는 사회적 모든 요소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10대 재벌 회장이 조폭까지 동원해 폭행에 직접 가담하고, 경찰은 이를 알고도 사건을 덮었다. 그러다 언론의 보도로 다시 사건화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구속하게 된 사건이다. 이 나라의 힘있는 기구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다. 단순히 가죽장갑 낀 회장의 폭력으로 희화화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이 사건은 돈의 권력화, 더 심하게 말하면 재벌의 권력화 가능성을 말해 주는 사건이다. 그는 이번 폭력에 자기 회사라는 조직을 사용했다. 경호팀장을 동원하고 회사조직을 이용해 폭력배를 불렀다. 회사 측근들은 이렇게 회장의 폭력에 간접 연루됐다. 사건이 표면화된 뒤에도 한화는 뒷수습에 분주했다. 개인의 단순 폭행사건이라면 김 회장이 자기 돈으로 변호사를 사서 처리했어야 한다. 이럴 때 한화라는 회사는 김 회장의 권력이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생명.권리.재산을 옹호하는 제도다. 개인재산은 상속할 권리가 보장된다. 만일 한화 같은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준다면 재산 외에 조직을 물려 주는 것이다. 권력을 물려주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권력의 세습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유재산을 보호해 주는 것이지 특권을 세습해 주는 제도가 아니다. 권력을 세습시키는 것은 봉건주의거나 왕조다.

 

이번 사건은 법치의 위기를 말해 주었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법을, 법을 집행하는 기구를 불신했다. 민주주의는 법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법 아래 평등하다는 뜻이다. 우리 자신이 만든 법에 똑같이 복종함으로써 모두는 자유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누구의 특권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법을 지키려는 열정을 갖게 된다. 김 회장은 특권을 누리려 했다. 돈과 회사의 힘으로 법을 뛰어넘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반면 피해자인 유흥업소 주인은 보복을 당하고도 고소할 엄두를 못 냈다. 재벌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법의 보호는 멀리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법의 보호를 불신하게 될 때 우리의 자유는, 권리는 누가 지켜 줄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권력들이 구조화될 수 있는 소지를 보여 주었다. 힘있는 사람, 힘있는 기관들 간에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협조를 통해 서로의 공동 이해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경찰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반 동안 이를 사건화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돈으로 매수됐을 수도 있고, 인맥으로 연결돼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이 덮으면 사건화가 안 되니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넘어간 사건들이 부지기수는 아니었을까? 이 사건은 한 달 반 뒤에야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언론도 초기에는 주춤거렸다. 왜 그랬을까. 취재가 힘들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광고라는 힘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을까. 이슈로 만들지 않는 능력, 그것이 바로 숨은 권력이다. 만일 언론도 계속 소극적이었다면 이 사건은 묻혔을 것이다. 사건이 표면화된 뒤에도 간단치 않았다. 한화 측은 이 나라 최대의 로펌회사를 동원했다. 최고의 변호사들이 구속을 피해 갈 수 있는 각종의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물론 돈의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구속됐다. 법원의 판단이었다.

 

나는 이번 사건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 나라의 희망을 본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 환경으로 보면 얼마든지 덮어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아직 그렇게는 썩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드러나야 할 일은 드러났다. 이슈가 되어야 할 일은 이슈가 되었다. 언론도, 법도 위태롭지만 작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회가 아직 건강함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혹시 재벌이라는 이유로 더 불리한 대우를 받아서도 안 된다.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건강한 나라다.

문창극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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