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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미래사회

땅이 거짖말하기 시작했다

 

 

땅이 거짓말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2007-04-21 19:28]    

부동산 10년 대폭락 시나리오 다치키 마코토 지음|강신규 옮김|21세기북스|287쪽|1만8000원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서울의 주택가격은 강남 일부 아파트의 경우 무려 두세배 이상 급등했다. 이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일본과 같은 급격한 버블 붕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필자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토지신화’가 붕괴된 1990년 일본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당시 일본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도쿄 오사카 등 6대 도시 평균 지가가 3배 이상 상승하는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다. 버블 형성에는 저금리,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금융기관의 부동산대출 확대 등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뿌리 박힌 ‘토지신화’가 크게 작용했다. 당시 일본 토지버블의 주체는 기업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장래의 공장 확대를 위해 토지를 사 두거나 복지 후생시설인 기숙사, 사택, 휴양소, 영빈관 등 기업 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 심지어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들도 금융기관에서 빌려 일단 땅을 취득한 뒤 빌딩을 지어서 임대하거나 전매를 통해 이익을 발생시켜 차입금을 변제하려는 요량으로 토지구입에 열중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토지가격 폭등으로 자산가치의 불공평성에 분노한 사람들을 달래고 거품경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래도 땅값 상승이 멈추지 않자 토지관련(취득·보유·양도) 세금을 대폭 올렸다. 일본은행(BOJ)도 통화증가율을 억제하는 등 강력한 금융긴축 정책을 펼쳤다. 1989년 5월 2.5%이던 공정할인율이 불과 1년여 만에 6%까지 상승하였다. 1990년 3월 당시 대장성은 부동산관련 융자에 대해 총량규제(부동산관련 대출증가율은 자산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를 실시했다.


이런 전방위적 정책은 결국 시장 참여자들의 ‘토지신화’에 대한 기대심리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투기 목적으로 사들인 부동산이 시장에 매물로 쏟아지면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단번에 하락세로 반전됐다. 그동안 절대적 토지 순 매수자였던 기업들은 서둘러 불필요한 부동산을 정리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순 매도자로 돌변했다. 기업들의 금융기관 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이자도 지불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던 막대한 부동산 담보 채권이 부실화됐다. 버블 형성 당시 무리하게 돈을 빌려 토지를 구입한 개인들도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여기에 고용불안과 고령화,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소비가 급격히 위축됐다. 결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동시에 부실화되면서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일컫는 장기불황 국면으로 빠지면서 일본과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다치키 마코토(立木信)가 2004년 쓴 이 책은 이런 버블 형성과 붕괴 과정을 주택 소비자의 입장에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득 양극화에 따른 중산층의 몰락, 주택시장의 변화, 일본 국민들의 의식변화 등 당시의 세태도 함께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부동산불패신화’와 일본의 ‘토지신화’는 농경시대로부터 내려오면서 형성된 뿌리박힌 의식이다. 이런 의식 위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 또한 빠르게 증가하면서 부동산은 가장 좋은 투자처로 인식되면서 부동산 가격은 다른 어느 자산보다 빠르게 올랐다. 이 책은 결국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인구·사회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가 지속적으로 악화될 경우, 우리의 ‘부동산불패신화’도 언젠간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 1990년 당시 일본처럼 전방위적 부동산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소위 ‘버블 세븐’을 중심으로 부동산가격 하락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일본보다 버블의 깊이와 넓이가 작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은행권이 튼튼해져 금융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일본이 경험한 극심한 장기불황 가능성은 낮지만 거품 붕괴는 이미 취약해진 가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어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기침체를 장기화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 또는 경착륙이냐의 문제를 떠나 개인, 기업, 금융기관 모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할 것과, 당시 일본이 우리의 훌륭한 반면교사임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원제 ‘地價 ‘最終’ 暴落’.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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