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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국민의 소리에 귀를 열어라!

[금요칼럼] 국민을 향해 귀를 열어라
[부산일보 2006-12-29 12:21]    


/박창호 수석 논설위원

 

 일본 여류 작가 시오노 나나미(69)는 최근 로마 천년사를 담은 책의 저술을 15년 만에 끝내 화제를 모았다. 1992년 '로마인 이야기'의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매년 한 권씩 책을 썼던 그는 올해 15권째인 '로마 세계의 종언'을 내놓은 것이다. 노작가의 뚝심이 놀랍지만 또한 "'천년 로마'의 비결은 공존의 지혜"라는 그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로마는 민족 생각 습관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공생했으나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非寬容)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막말로 상대를 폄훼하거나 냉소와 험담으로 날을 세우는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돌이켜 보면 병술년은 가슴 뿌듯한 일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더 많았다. 미군기지 이전 등을 둘러싼 화염과 죽봉시위,법원과 검찰의 볼썽사나운 힘겨루기,서민만 곱사등이가 된 부동산 광풍은 시련과 고비의 매듭이었다. 청와대가 정한 올해 초 사자성어 천지교태(天地交泰)가 밀운불우(密雲不雨)로 낙착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천지의 기운이 교합해 양극화 현상이 크게 좁혀 질 것이라는 청와대의 자신감은 구름만 모였을 뿐 비는 오지 않았다는 평가에 머물고 말았으니 할말이 없을 법하다.

 

더구나 세밑을 강타한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 파문으로 국민들의 자존심은 참담하게 구겨졌다. 상대방의 인격을 단칼에 베는 독선이 어느 분야에서든 독버섯처럼 기생하지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대통령은 할말을 했다고 하지만 송년회의 '단골 안주'는 단연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했던 막말 수준을 넘는 듣기 민망한 언사도 나온다. 대통령의 표현이 거칠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는 의견은 모기 소리에 불과하고 실망과 냉소적 비판이 대세를 이룬다.

 

혹자는 대통령의 막말이 절대 권력자의 절대 고독감이 빚은 직업병이 아닌가 하는 흥미로운 추측을 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직위가 강박관념에 빠뜨리면 자기소외로 이어져 말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는 고독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근원적 배경은 불신에 있다. 군 원로·전직 총리·국가기관 등에 대한 원색의 폄훼와 대통령 자신에 대한 비하 발언의 기저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데 미흡했던 마디가 언뜻 드러난다.

 

예부터 지도자는 귀가 큰 것을 덕성으로 삼았다. 삼국지의 후덕한 군주 유비는 귀가 컸다. 그의 키는 7척5촌이며 일어서면 두 손이 무릎까지 내려오고 귀는 스스로 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유비를 대이아(大耳兒)로 불렀다는 기록도 나온다. 용비어천가 29장은 이를 인용한 뒤 명나라 태종의 어사가 이성계의 기이한 귀는 고금에 보지 못했다고 찬탄한 점을 선양하고 있다.

 

흔히 종교에서 기도는 듣는 것을 제일로 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32호상(好相)의 부처님은 귓볼이 길고 후덕해 대이상 (大耳相)이라고 한다. 고 테레사 수녀(1910~1997)의 생전 인터뷰 내용도 감동적이다. 테레사 수녀는 무엇을 기도하느냐고 묻자 "그냥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하느님은 뭐라고 하느냐는 질문에는 "하느님도 들으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진실한 소통을 위한 기도는 인체의 다른 감각기관을 일시 폐쇄하고 신을 향해 귀를 여는 것이라는 뜻인가. 비단 종교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민 앞에 나설 지도자라면 새겨야할 덕목이다.

 

대화와 조정이 요체가 되는 사회에서 귀의 역할을 경시할 수 없다. 말은 1분 동안 125단어를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귀는 500단어를 들을 수 있으니 효과적이지 않은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느냐보다 국민들의 귀에 어떻게 들렸느냐가 더 중요하다. 국민을 향해 말하고 국민의 말에 귀를 세워야 한다

 

조선 광해군 때 벼슬이 좌찬성에 올랐던 이상의(李尙毅 1560~1624)는 평소 경망한 언행을 자제하기 위해 방울을 달고 다녔다고 대동기문(大東奇聞)에 기록돼 있다. 누가 대통령의 막말 발언을 자제시키기 위해 방울이라도 달아 주어야 하는가. '혀 아래 도끼 있고 거친 말의 씨앗이 부메랑이 된다'는 속담을 절제력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믐날 밤이 되면 제야의 종이 33번 울린다. '종 소리는 마음을 맑게하고 풍속을 깨우치고 음향을 조화시키며 원기를 통달케 하는 덕을 지녔다'는 이백(李白)의 종 예찬이 솔깃하다. 제야의 종에서 울리는 맥놀이를 들으며 공존과 공생의 이치를 깨닫기 바란다. pch@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