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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우리 역사의 재해석 8





우리 역사의 재해석 8 (마지막)


                                                                             호평동 아파트 전경


지금까지 이진아 박사의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라는 책의 일부를 소개했다. 그녀는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16년이 저물어갈 무렵 <무한 도전>에서 우리 역사를 랩에 담아 공연하는 특집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인기있던 역사 강사가 무한도전 맴버들과 그들의 파트너가 될 래퍼들에게 한국사를 강연하는 부분이 나온다. 열정 가득한 강사의 강의에 평소 한국사에 별 관심이 없던 출연진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연으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에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며 한민족이 가진 잠재력을 되찿으려는 이 기획의 의도를 충분히 살려낸 출연진들의 열정이기도 하고 랩이라는 형식의 젊은 혈기를 분방하게 발산하기 좋은 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진지한 주제를 아름답게 승회시켰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러나 그보다 강하게 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주 깊이 감추어놓은 상처가 건드려지는 듯한 통증이었다.

그것은 우리 역사를 되찿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런 책임감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심이주었던 것 같다. <가락국 탐사>, <히미코 도래의 수수께끼>, <가야 공주 일본에 가다> 등의 저술을 통해 1970년대에 최초로 한국 해양사의 가능성을 제기하셨던 이종기 선생이다. 선친은 당시 국사학계 반박과 그것을 신뢰하는 주류 미디어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해양국가의 위상과 활동상 연구를 열정적으로 계속하셨다. 아버지의 열정을 이끈 것은 축소되고 망각된 우리 과거를 되찿아야 21세기에 우리의 본 모습이 발현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의 일은 흥미로웠지만 나는 그 분야는 그분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고 처음에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름대로 인생을 걸었고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암마가 되면서 30대 후반에 들어서자 내 인생의 색깔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의식에 기반한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에서 나왔다. 환경문제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고, 환경단체의 상근 활동가로 살고, 그 틀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한국 교육과 미디어 그리고 정보전달 시스템에서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바로보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1997년 당시, 서구 지식인계에서 센세이션이었던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를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나의 관점은 더욱 뚜렸한 방향으로 다듬어져갔다. 즉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환경변화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어 환경사에 대한 뛰어난 저작들을 번역하거나 원문을 접하면서 이 분야에 몰두하게 되었다. 여러 학문 분야를 두루 공부했던 청소년기와 대학원에서 받은 인류학 훈련이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차원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아울러 보는 습관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가 그렇게 되찿으려고 노력했던 조상의 옛 모습, 그것이 그렇게나 흔적도 없이 지워진 데는 지구환경의 거시적 변화에 따른 인간의 사고방식 변화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과 그리고 천천히 꾸준히 계속되는 지구환경 변화의 주기에 따라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때가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변 관심사들로 인해 진정한 관심사를 추구하지 못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의 궁극적인 관심사인 환경과 역사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관찰하고 정보를 접했다. 나와 비슷한 전문가들의 연구도 여럿 쏟아져나왔다. 그런 지식과 정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내 마음과 컴푸터에 저장했다. 그러다가 졸저 <환경 지식의 재발견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재출간하고 싶다는 루아크 천경호 대표의 제안을 받고, 그 책을 출간할 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역사서를 쓰고 싶다고 말했고, 대표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내 마음 속에는 파문이 일기 시작했고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가 폭발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다고 해서 금방 되는 것은 아니다. 전업은 아니더라도 계속 글은 써왔지만 책 한 권을 구상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혼자 고심하고 이리 저리 써보았지만 도통 큰 틀이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요즘 학문세계의 불문율 같은 것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역사 문제는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역사학계의 현실일 뿐 아니라 특히 고대사는 더욱 그러했다.

<무한도전> 특집은 나를 확 떠미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생명력 넘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누군가가 내 마음 속 깊는 곳에 꼭꼭 잠가두었던 비밀창고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참담한 현실에 주눅들지 않고 역사를 돌아보면서 힘을 추스르려 했다. 

그런데 우리가 돌아볼 역사가 세종대왕, 이순신, 유관순밖에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분들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최근 이어지는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는 늦어도 20만 년 전부터 인간이 집단생활을 했고, 약 1만 년 전부터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앞선 문화를 꽃피우며 살았다는 증거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 엄청난 과거 속에서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역사가 몇 몇 위대한 인물에 국한된다는 점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2017년 초, 노트북을 들고 무작정 떠나 구미 금오산에 가고 싶었다.  저녁에 도착해 호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호텔 창가에서 금오산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구미는 금오산이 시가지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구미천이라는 하천이 세상과 이어주는 역활을 하는 듯한 지형을 가졌다. 구미천은 낙동강과 합쳐지며 더 넓은 세상으로 연결된다. 아직까지 국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구미는 틀림없이 가야가 전성기였을 당시 잘 나가는 속국으로서 가야 연맹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그 금오산이 나를 격려해주는 것 같아 나는 주저없이 책을 쓰기 시작헸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글쓰기는 지난 일년 동안 거침없이 진행되었고 <시사저널>에 연재하고 포털사이트에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더 힘을 받을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최근에 접한 자료들은 내 생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더해주었다.

이 글은 주장이라기보다 제언에 가깝다. 우리 역사도 이렇게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권고 같은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동의해서 혹은 동의하지 않아서 더 깊이 연구해보려는 이가 생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글을 쓰면서 가장 바라는 점이다. 설사 그 과정에서 이 책의 오류가  밝혀진다 해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폄하하며 구석에 앉아 있는 역사관을 갖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글의 성격을 고려해서, 또 읽는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글에 나온 사실의 근거나 인용문에 일일이 주석을 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글을 이루는 내용은 엄연한 학문적. 사실적 근거에 입각해 그 사실을 전달하거나 추론한 것임을 밝힌다. 다시말하면 이 글은 픽션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와 직식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다.

                                                                                                    2017년 여의도에서, 이진아


이 박사는 책 속에서 '속속 드러나는 역사의 새로운 모습'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왜곡'이란 역사기록의 본질적인 속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떤 대상이든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20세기 초 천재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켄비르크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수식으로 증명한 바 있다.역사를 뜻하는 '史'를 보면 '中' 자가 살짝 비뚤어져 있는데, 붓을 들어 균형을 취하게 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즉 인간은 사실을 완전히 중립적으로 볼 수 없는데, 글로 남기면서 현실과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20세기의 대표 역사학자인 E.H. 카는 좀더 직설적으로 "역사는 해석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다양한 입장에서 본 사실, 그 중에서도 한 시대, 한 사회를 풍미하는 콘텐츠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 역사는 반만년, 즉 5000년이라는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상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우리가 위대한 해양족이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지난 몇 백 년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또 현재 인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 세가지는 주류 담론이고, 다른 견해도 많아서 현재 논쟁 중이다.

그러면 어떤 담론이 그 시대의 주류 의견이 되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말한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천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미셸 푸코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지식은 권력이다!" 다시 말해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식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역사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살펴온 우리는 이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해양 활동 역사가 사라진 것은 통일신라에서 조선까지는 주로 중국의 영향 때문이었고, 그 이후로는 일본과, 더 근본적으로는 서양 열강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해양 활동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것도 힘의 논리가 불러온 산물이다. 가야보다 활동 규모가 월등하게 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는 나중에 '제국' 칭호까지 받았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살펴보겠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기후도 온난기에서 한랭기를 거쳐 다시 온난기로 돌아가는 순환을 반복하면서 인류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근대기 동안 형성되어온 역사 콘텐츠를 상당 부분 새로 써야 할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과거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 방법이 발달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가 계속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속도는 너무 빨라서 근대기에 형성된 콘텐츠를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온 사람들은 적응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지금까지 역사 담론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학계는 찬반으로 나뉘어 들끓었다. 현대사회의 강력한 교육 수단인 미디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의견을 소개하는데, 뭔가 파격적인 내용이 나오면 " 이 콘텐츠는 언론사의 의견이 아니라 필자의 의견"이라는 단서를 붙이곤 했다. 그러다보니 대중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싯적 교과서에서 배운게 만고의 진리라고 믿는 노년층에서부터 온라인으로 접하는, 근거가 부족한 콘텐츠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21세기는 정말 다양한 담론이 평행선을 그리며 혼재하는 세상이다.

이 글은은 그 다양한 담론 가운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라고 판단되는 콘텐츠 중 일부를 정리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견고한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는 주장을 다루는 것에서 출발해보겠다.


세계적인 고(古)천문학 전문가 박창범 고등교육원 교수가 2002년에 쓴 책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제시한 지도다. 고천문학이란 고문서에 나와 있는 천체 기록을 분석하여 오랜 엣날 천체 상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연구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역사에서 왜곡될 염려가 없는 부분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천문 현상이 인간 사회의 큰 사건을 암시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식이나 월식 또는 특이한 천문 형상이 나타나면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역사서에도 천문 형상에 대한 기록이 꽤 남아 있다. 찬문 형상에 대해서는 없었던 일을 굳이 조작하여 기록할 이유가 없으며 나중에는 권력자가 바뀐다 해도 굳이 왜곡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고천문학은 의외로 역사기록의 진위를 가리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위 지도는 박창법 교수가 고긹에 등장하는 일식을 분석해 일식이 관측된 지점이 어디였는지 표시한 것이다. 등고선처럼 그려진 동심원에서 가운데 속한 부분이 관측지로서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지도를 보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현대에는 천문관측소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공기 좋은 산이나 사막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오염된 공기를 피해 깨끗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관측 자료는 인터넷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어디든 보낼 수 있으므로 굳이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관측소를 둘 필요가 없다. 하지만 고대에는 대기오염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고 천문 관측 자료는 그 사회의 지배자가 관장하는 것이기에 왕궁이 있는 곳과 가까운 곳, 또는 최소한 정치 중심지인 대도시에 위치했다. 신라의 첨성대가 경주에 있었듯이 말이다.

논리대로 지도를 해석한다면, 고구려의 정치 중심지는 지금은 러시아 영토인 아무르 강 중상류와 우랄 산맥 동쪽 서시베리아 평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대 신라(통일신라 이전)의 도성은 양자강과 장강 사이의 노른자 땅 중심부이고, 백제의 도성은 요하 유역이었다. 또 하대 신라의 도성은 한반도 남부에 있었으며 일본 열도 전체가 신라의 영토였든지, 아니면 적어도 통일 국가 수준으로 활발히 교류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니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인 삼국시대 혹은 사국시대에 우리 조상의 강역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동아시아와 북아시아 전역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신라가 당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뒤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다 해도 한반도 전체와 만주 평야, 러시아동쪽까지를 포함하는 규모였던 것으로 불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박창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것을 밝히는 일은 인문사회과학자의 과제일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 박사가 주장하는 우리 고대사는 지구 환경 변화와 더불어 천문 관측지 지도를 통해 왜곡되지 않은 우리 고대 역사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고려 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를 근거로 전해져 왔고, 기타 대부분의 역사서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이 두 권의 책에서 실마리를 찿고자 노력했고  지금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일제의 집요한 한민족 역사 말살정책에 따라 엄청나게 왜곡된 식민사관이 한국의 주류 역사학이 되어 지금까지 우리 역사로 인식되고 확산되어 왔다.

유대인은 그들의 역사를 타민족의 신화, 설화, 역사까지 포함하여 자신들의 역사서를 만들었는데 바로 구약성서다. 그들은 스스로 하느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으로 약속의 땅을 되찿기 위해 2000년 이상 유랑생활을 해왔다.  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지만 유일신 사상이 점철된 구약성경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유대 민족의 역사서로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 그럴진대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멸시하고 반박하며 기존의 역사 울타리 속에서 한 걸음도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우리 역사학계의 대응은 어찌할 것인지, 고구려는 물론 발해 역사까지 빼앗아가는 그들에게 어떤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반박 자료를 내세우며 논쟁을 벌일 각오는 준비되고 있는 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각종 역사 관련 연구단체가 이룬 성과는 아직도 미미하고 내세울 논거는 막연하기만 하다. 이단이 장악한 우리 역사 학계가 언제 민족 자존의 역사를 재인식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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