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배학균씨(가명·45·회사원)는 방학기간 중·고교생인 아이 둘의 각종 사교육비를 마련하느라 적금통장을 깼고, 여름휴가도 포기했다. 딸 아이(중 1년)의 경우, 이번주에 한 달간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낸다. 홈스테이를 하며 현지 학교에 다니는 프로그램이다. 연수비 450만원을 포함해 용돈과 기타 준비물 등에 들어간 돈만 500만원이나 된다.
아들(고 1년)도 '돈을 먹는 하마'이다. 방학 동안 학교의 보충수업 이외에 국어·수학·영어 등 주요 과목을 학원이나 교습소에서 공부할 예정이다. 교습소의 수강료는 과목당 평균 30만원가량이다. 보충 수업비를 제외하고도 대충 100만원 이상이 든다. 김씨는 이번 방학기간 아이 둘의 교육비에 모두 650만∼700만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김씨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만 사교육을 시키려 하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아이들 방학이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방학은 사교육?= 방학이 '사교육의 전쟁터'로 변질된 지 오래다. 대부분 중·고교생은 방학기간에 대하소설을 완독한다든지, 장기간 여행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학원·교습소에서 방학 특강을 수강하는 것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사교육에서도 방학은 대목이다. 부모·학생의 불안 심리를 부추겨 '4주 완성' '총정리' '선행학습' 등의 명목으로 수강료를 평소보다 20∼30% 더 받기도 한다. 외국어학원의 경우 정규 강좌 이외에 고액의 원어민 특강반을 편성하고, 수강을 은근히 강요한다. 초등 5학년 자녀를 둔 이희경씨(37)는 "방학 중에 정규 강좌 이외에 50만원을 주고 원어민이 강의하는 특강을 듣기로 했다. 학원측은 특강을 듣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운을 띄우니, 듣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방학 때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가정은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젖다보니, 학생들 사이에는 '공부=사교육'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다. 김영지양(중 1년)은 "반에서 1등하는 친구는 전과목을 과외받는다. 나도 방학 때 그렇게 받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방학기간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학생·부모의 사교육 의존 경향도 크지만, 공급자인 교습소 등의 횡포도 무시할 수 없다. 소수 맞춤형 강좌를 표방하는 중·고교생 교습소의 경우, 수강료를 기준보다 많은 학생당 평균 20만∼30만원 이상을 받는 등 불·탈법으로 운영되는 곳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단속 인원 부족이라는 핑계를 대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강대문 대구입시학원연합회장은 "불·탈법적으로 운영되는 교습소만 제도권 학원으로 흡수되면 사교육비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면받는 공교육= 일반계 고교의 경우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학력 증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방학 중에도 3주가량 하루에 4∼5시간 보충학습과 2∼3시간 자율학습을 강행한다. 수익자 부담 원칙이라 보충학습비를 내지만, 학생들은 이런 학습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대체로 수업이 주입식, 문제풀이식의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돼 흥미가 없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 최근엔 선택식 수강제를 도입해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학교도 있지만, 아직까진 극소수에 불과하다.
초·중학교의 방과후 강좌도 수요자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방학기간엔 방과후 강좌 시범학교를 제외한 대부분 학교가 특기적성 분야를 중심으로 명맥만 근근이 유지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영남일보 윤철희기자 fehy@yeongnam.com ,사진=우태욱기자 wtw@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