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실걸이꽃 1 본문
실걸이꽃 1

실걸이꽃
실걸이꽃은 주로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전설에 의하면 한 어부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영영 돌어오지 않자 해안가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난 다음에 그 영혼이 환생하여 해안가에 자생한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꽃밭을 지나가면 낚시 바늘같은 가시가 옷에 걸리면 뿌리가 뽑힐지언정 가시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옷걸이꽃이라고도 한다.

봄의 향연
생도 2학년 시절, 겨울 방학 때, 대구 시내 YMCA 회관 홍보 전시회 활동 중, 대구 최고의 명문 여고 교복을 입고 팬싱칼을 들고 3층으로 올라가는 여고 2학년의 예쁜 소녀를 보았다.
그녀는 펜싱을 마치고 나중에 내려오다가 2층의 홍보관을 기웃거리자 나는 기다리고 있던 차, 후다닥 다가가서 전시된 홍보물을 안내하며 각종 사진을 설명했다. 마지막에는 방문록에 주소를 기록하는데 대구시 대명동 00번지에 산다고 기록했다. 내가 다음날 찿아갈지 모른다고 하지 얼굴에 눈웃음만 가득한채 총총히 떠나갔다. 나는 그녀의 주소를 적어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고민했다. 용감하지 않으면 미인을 얻을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아름다운 무수한 상상을 하면서 밤을 지샜다.
다음날 주말이라 생도복을 입고 그녀의 주소록을 들고 대명동 그녀 집을 찿아갔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찿은 집은 오래된 허름한 한옥집이었다. 문패도 김ㅇㅇ으로 되어 있어 틀림없어 보였다. 한참을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데 나이드신 어떤 중년 남자가 내 옆에 다가왔다. 그리고 대문 앞에 서서 있던 나를 보면서 물었다.
"누구 찿아왔나?"
"네 김혜연이 찿아왔습니다."
" 응~ 그래? "
인사를 하자 의아한 눈초리로 생도복을 입은 나를 아래 위로 나를 훝어보던 그분은 잠시 망설이더니,
"따라 들어와!"
명령쪼로 말하면서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여보 나왔소!"
하며 들어가자 마루문을 열고 미모의 중년 여자와 부티나는 모습의 그녀가 같이 나왔다. 그분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같이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어머머, 정말 찿아오셨네~~"하면서 그녀는 놀랐고, 그녀의 어머니는
"아니, 누구세요?" 하며 그녀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네, 김혜연이 찿아왔습니다. 어제 처음 만나고 사전 아무런 약속없이 방문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면서 생도의 기개를 내세우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수줍어하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긴장한 눈으로 나를 찬찬히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만나게 된 자초지종을 그녀의 부모님께 직접 설명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그녀의 아버지가 거실로 들어가면서,
"따라 들어와!"라고 하였다. 난 명령쪼의 지시에 얼어붙은 몸이지만 육사 생도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따라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그녀의 어머니가 다과상을 내왔다. 차를 마시면서 육사 2학년 생도이며 대구 출신으로 어제 그녀을 만나 이렇게 찿아뵙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빙그래 웃으시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더니 장농 위에 있던 오래된 앨범 여러 권을 꺼내드니 한권 한권을 펼치면서 사진을 보여주면서 과거 자신의 육사 생도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지나온 과거를 나에게 하나 하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또렸하였고 나중에 대령으로 전역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쩌렁쩌렁하였다.
그분의 과거는 대략 이러했다.
육사 졸업 후 임관하여 근무하다가 얼마 후 제주도 4.3 사건이 일어나자 제주도 토벌전에 전 부대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당시 무척 미인이며 하숙집 주인 딸이었던 지금의 아내와 처음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바로 그 딸이 헤연이었다.
제주도 작전 후 승승장구, 대령까지 진급하여 당시 논산훈련소
부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중, 당시 특무대장 김창용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군내 좌경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그때 박정희를 비롯하여 많은 장교들이 연루되어 구속되었는데, 동기생 중 선두 주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물론 제주도 처가족의 인친척이 폭도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자 김대령도 그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결국 군복을 벗었다고 한다.
나는 무릎을 끊고 앉아 묵묵히 그 분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한참이나 나이어린 젊은 후배에게 자신의 과거를 틀어놓으며 분루를 삼키고 있는 그 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미래도 어쩌면 이분처럼 중도에 군복을 벗을 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군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내에서 마지막에 최고의 계급에 올라가는 것이 최종의 목표이며 꿈이다. 전쟁에 승리하고 국민들이 존경을 한몸에 받는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4성 장군은 군인이라면 누구나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의 조직은 피라미트 형태의 삼각형 조직으로 누구나 모두 4성 장군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대상자 중에서 중도에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인은 애국심과 정의감으로 어떤 근무지도 마다않고 명령나는대로 달려가 부대의 무너진 기강과 사기를 북돋우고 병사들이 자신의 말에 따라 유사시 임무수행을 위해서는 목숨도 던질 수 있는 충성스런 군인으로 양성하여 전시에 대비하는 것이다. 물론 병사들이 근무하는 동안 한사람도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 않도록 평소 부대관리는 물론 훈련과 북지에도 관심을 쏟아 무시히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지휘관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앨범 설명을 마치자, 그녀의 어머니께서 들어오시더니 "이제 그만이야기 하세요" 하면서 나를 혜연이 방으로 안내했다. 둘만의 이야기 시간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녀의 방에 들어서니, 향기가 가득한 방에는 예쁜 커텐과 책상, 책들이 가지런히 꼿혀 있었다. 그녀는 부그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녀의 얼굴은 밝지만 눈속에는 수심이 스며있는 수선화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방에서 나는 향긋한 꽃내음이 나의 코로 스며들었다.
아버지의 한맺힌 군생활, 그래서 모진 고생을 하신 어머니, 결국 중도 전역하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진 재산도 없이 단칸 한옥에서 두 자녀를 키우시면서 어렵게 살아오면서 고생만 해왔다는 가정사를 포함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나의 가슴 한 쪽에는 군인의 말로를 미리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육사를 졸업할 당시에는 이 세상이 모두 내 것인양 가슴벅차게 출발을 하는 것이 대부분의 처음 임관하는 소위들이다. 그러나 그 소위가 계급이 올라가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군내에서 정당하지 못한 인간들의 불의와 맛서 싸우다가 하나둘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되고 그들의 약사빠른 이기적인 언행과 태도에 실망하고 진급에 비선되면 결국은 군생활을 포기하고 군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겠으니 꼭 답장을 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연인의 편지는 남자에게는 군생활에 커다란 힘이 되고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며 그녀를 나의 생각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가두어 두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의 방을 나와 부모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온세상이 내것인양 힘차게 그녀의 집을 나왔다. 마치 내 인생에서 봄의 향연이 시작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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